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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괴에 걸리는 시간 단 35초, 유괴를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서민수 경찰관(경찰인재개발원 112지역 경찰교육센터장)
불편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단어가 있죠. 바로, ‘납치(拉致)’와 ‘유괴(誘拐)’입니다. 요즘 20대 자녀를 둔 시니어 부모는 ‘캄보디아’의 ‘캄’자만 들어도 화들짝 놀라고 또, 영유아 자녀를 둔 주니어 부모는 ‘유괴’의 ‘유’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납치도 납치지만,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들은 ‘유괴’ 때문에 말들이 많습니다. 사전에서 ‘납치’는 “강제 수단을 써서 억지로 데리고 감”이라 하고, ‘유괴’는 사람을 속여서 꾀어냄‘이라고 하는 데 어쨌든 아이를 강제로 데리고 가든, 속여서 데리고 가든 부모의 동의 없이 다른 사람이 아이를 다른 장소로 ‘이동’시키는 행위는 그 자체로 ‘중범죄’입니다.
지난달, 서울 지역 도로상에서 대낮에 20대 남성들이 초등학생 3명을 납치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귀엽다. 집에 데려다주겠다”라며 아이들을 유인해 차에 태우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었죠. 범인들은 ‘장난’이었다고 말하지만,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최근 등장한 유괴 사건들을 나열해 보니 서울 유괴 사건 이후 전국에서 연이어 6건이 발생했더군요. “집에 데려다줄게.”, “알바 할래?”, “짜장면 먹으러 가자.” 등 아이를 유인하는 문장도 다양했죠. 특히, 유괴 피해자 7명 중 6명이 여성 아동이었고, 가해자의 연령층도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최근 “유괴의 목적이 ‘돈’에서 ‘성(性)’으로 이동하고 있다”라는 전문들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실제 2023년 대검찰청 통계를 보면, 13세 미만 아동 유괴 범죄가 2019년에는 138건이었던 게 2023년이 되어서 204건으로 증가했는데 피해자의 62%가 여성 아동이었고, 가해자의 73%가 남성이었습니다. 더구나 범죄 장소도 어린이집, 유치원보다는 부모와 거리가 멀지 않은 아파트, 연립주택 등 거주지 주변에서 다수 발생했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요즘 아이들은 유괴 예방 교육을 받느라 바쁩니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고사리손을 흔들며 매일 “싫어요. 안 돼요. 도와주세요.”를 목청껏 외치고, 집에 와서도 배운 걸 복습합니다. 이때 부모가 함께한다면 유괴 예방 교육은 더 효과적이겠죠. 특히 실제 유괴 사례에서 유괴범이 아이를 강제로 끌고 간 건 25%에 불과했고, 아이의 환심을 사 스스로 따라나서게 한 경우가 75%였던 것처럼 부모는 아이의 목청을 강하게 끌어내는 노력이 중요해 보입니다.
도구적인 측면에서 보면 가장 완벽한 유괴 예방 도구는 ‘부모’입니다. 아이 안전에 대해 부모를 대신할 수 있는 건 없죠. 그래서 아이의 유괴 예방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일상에서 부모는 아이에게 ‘손을 뻗어 잡을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한다면, 아이는 유괴당할 확률이 제로에 가깝습니다. 앞서 우리는 유괴의 장소가 거주지 주변이고, 수법도 물리력보다는 속임수를 통해 유괴범이 접근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또, 실제 미국 「어린이유괴예방기구」 통계에 따르면 아동 유괴에 걸리는 시간은 ‘단 35초’라고 하더군요. 그만큼 유괴 범죄가 부모와 아이의 거리가 중요하다는 걸 말해줍니다.
부모 다음에 완벽한 도구는 바로 ‘자녀’입니다. 부모는 “어린 자녀가 어떻게 자기를 지킬 수 있나요?”라고 묻지만, 부모가 아이를 24시간 따라다닐 수 없는 상황을 생각하면, 부모의 공백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아이에게 최소한의 기술은 필요합니다.
먼저, 부모는 아이에게 “다른 사람을 따라가면 안 돼”라고 알려주세요. 특히, 부모를 제외한 다른 사람을 함부로 따라가면 안 된다고 알려주시고요. 특히, 실제 아동 유괴의 60%가 이웃이나 집 근처 상점·학원 종사자 등 면식범의 소행이었던 것처럼 ‘이웃 어른’이라도 부모의 허락 없이는 절대 따라가면 안 된다고 알려주세요. 그렇다고 아이에게 무조건 이웃을 의심하라고 해서는 안 되겠죠. 여기서 중요한 건, 무조건 부모와 거리가 멀어져서는 안 된다는 게 핵심입니다.
두 번째는 “엄마 아빠 차 말고는 아무 차나 타면 안 돼”라고 알려주세요. 또, 어쩔 수 없이 차를 타게 되는 상황이 생기면 주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싫어요~”, “안 돼요~”, “도와주세요~”라고 큰 소리로 외쳐야 한다고 말해줘야 합니다. 통계에서도 유괴 범죄는 아이를 유인해 차량에 태우는 수법이 많았습니다. 범인들은 일단 아이를 차에 태우면 범죄가 성사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 큰소리로 ‘외치는 행동’이 어쩌면 유괴 예방에서 가장 중요한 카드가 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누가 도와달라고 하면 절대 도와주면 안 돼’라고 알려주세요. 유괴 범죄에서 다수의 비율을 차지하는 수법 중 하나가 바로 ‘동정심’을 유발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범죄자가 아이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유괴에 성공하는 사례가 많았다는 겁니다. 특히, 아이들은 대부분 ‘착한 아이 증후군’을 가지고 있어 상대가 아프고, 다치고, 슬픈 상황이 되었다고 말하면, 쉽게 속아 넘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 유괴 사건으로 부모님들이 걱정하고 있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이슈가 오히려 부모에게 아이의 양육을 튼튼하게 만드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정 안팎에서 부모와 자녀의 거리를 측정해 좁혀보고, 다양한 유괴 상황들을 설정해 상황극도 체험해 보는 등 평소에 배울 수 없었던 자녀에 대한 안전 교육을 가족 전체가 점검해 보는 건 아이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이 세상에서 자녀 안전만큼은 그 누구도 부모를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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