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세 고시'가 영유아에게 위험한 이유
김영훈 교수(가톨릭대학교 소아청소년과 교수)
우리나라에서 ‘4세 고시’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4세 아이가 영어유치원 입학을 위해 사교육을 받고, 부모는 입시전략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영어 조기교육은 마치 필수 코스로 여겨지며, 유아기부터 원어민수업과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4세 고시’라는 현상은 영유아들에게 너무 이른 학습경쟁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큽니다. 특히 영어 조기교육은, 일찍 시작하면 유리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모국어 능력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어에 집중할 경우 언어혼동이 생길 수 있습니다. 특히 언어는 단순한 소통 수단이 아니라 사고력과 직결되는 중요한 도구이기 때문에, 모국어의 기반 없이 영어를 학습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첫째, 영유아의 발달 특성을 무시한 조기교육이 문제입니다.
영유아들은 놀이를 통해 신체, 인지, 정서, 사회성을 자연스럽게 발달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학습중심의 사교육은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발달에 필요한 자유로운 놀이시간을 빼앗습니다. 영유아에게 놀이란 단순한 즐거움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배우고 창의력을 키우며 문제해결능력을 발달시킵니다. 하지만 사교육으로 인해 놀이시간이 줄어들면 아이들은 이러한 중요한 발달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아이들의 사회성과 자율성을 저하시킬 수 있습니다. 더구나 사교육은 종종 아이들의 발달단계에 맞지 않은 학습을 강요하며, 이는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학습에 대한 흥미를 잃게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영유아에서 늘어나고 있는 두통이나 틱장애는 한국 영유아의 처지를 대변하는 하나의 예입니다. 특히 영어, 수학 등 지식 중심의 교육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창의성과 정서발달이 지체될 위험이 있습니다.
둘째, 부모의 불안과 경쟁심리를 자극하는 교육 시장의 상술도 문제입니다.
일부 교육업체는 ‘선행학습’이나 ‘두뇌계발’이라는 자극적인 문구를 사용해 부모들의 불안을 부추키고, 과도한 교육비를 요구합니다. 이에 따라 부모들은 아이의 필요보다는 사회적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사교육을 선택하게 되며, 이는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비싼 교육비와 과도한 시간투자는 물론, 아이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부모와 아이 모두가 좌절감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아이들은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으며, 이는 정서적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소아우울증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입니다.
셋째, 사교육은 가정 간 교육격차를 심화시킵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은 다양한 사교육 프로그램에 자녀를 참여시킬 수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가정은 상대적으로 제한된 교육 환경에 놓입니다. 경제력이 높은 가정일수록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교육격차를 심화시키고 사회적 불평등을 더욱 고착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영유아 시기의 교육격차는 이후 학업성취도와 사회적 성공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영유아 사교육은 단기적으로는 부모의 불안을 해소해 줄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인 효과가 불확실합니다. 지나친 조기교육은 아이들이 학습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들고, 자발적인 탐구심과 자기주도성을 해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나라 영유아 사교육은 부모들의 선의와 높은 기대에서 시작되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발달과 행복을 저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영유아교육은 학습과 경쟁보다는 놀이와 경험을 통한 자연스러운 성장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부모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을 조성하여야 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