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관계도 배워야 잘한다
조선미 교수(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얼마 전 초등학교 3학년 아이를 상담한 적이 있다. 3학년이면 학교생활에도 익숙해져 편하게 다닐 나이인데 아침마다 학교에 가지 않겠다며 운다는 것이다. 이유를 물어봐도 그냥 싫다고면 할 뿐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 선생님도 조용하고 정적인 편이지만 문제 없이 지내는데 영문을 모르겠다고 했다. 친구 관계에 대해서는 특별히 친한 친구는 없는 것 같지만 무난한 편이라고 했다. 아이는 외동이었고, 순한 편이라 크게 혼난 적이 없었으며,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아이가 좋아하는 미술학원 외에는 보내지 않고 있다. 한 어린이집에 쭉 다니다 보니 엄마들끼리 친해져 자주 만나 자주 어울리게 해주었고, 그 친구들과는 아직도 만나면 잘 지낸다고 했다. 다만 반이 달라 약속을 하지 않으면 예전처럼 자주 만나지는 못한다고 했다. 아이가 순하다 보니 엄마는 육아에 큰 어려움이 없었고, 아이와는 친구처럼 알콩달콩 지내왔다고 했다.
듣던 대로 아이는 순한 인상에 기분도 괜찮아 보였다. 학교생활이 어렵지는 않다고 했고, 가기 싫은 이유는 심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왜 심심해? 친구들하고 놀면 되잖아”
“애들이 나한테 말을 걸지 않아요”
“네가 먼저 다가가면 되잖아”
“저는 친구 없어도 돼요. 엄마하고 얘기하는 게 제일 좋아요”
엄마에게 아이가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게 원인인 것 같다고 했고, 학교를 그만 두면 사회성을 배울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에 학교는 반드시 보내야 한다는 조언을 해서 돌려보냈다.
이 사례를 든 것은 비슷한 아이들이 점차 많아지기 때문이다. 또래 관계가 다른 관계에 비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또래 관계에서는 누가 누구를 배려한다거나 특별히 봐주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형아나 동생하고는 잘 노는데 또래와만 유독 힘들어한다는 고민 상담도 많이 받았다. 이런 모습을 사회성이 제한된 아이에게서 볼 수 있다. 형아는 형아라서 봐주고, 동생은 동생이니까 말을 잘 듣기 때문에 또래 관계보다는 수월하다. 또래와 어울리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온전히 아이의 사회성에 따라 결정된다. 어렸을 때는 체격과 힘, 또는 색다른 장난감, 발 넓은 엄마가 많은 부분을 보완해 주지만 열 살 무렵이 되면 서로에 대한 평가가 관계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친절하고 배려심 깊은 아이가 인기를 얻는다.
또래 관계가 힘든 또 다른 이유는 입장을 바꿔 보는 능력이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내가 좋아하는 놀이만 하자고 하거나 상대방 기분이 어떤지 모르고 눈치 없는 행동을 하면 친구를 사귈 수 없다. 단짝 친구를 만드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보통 친구와 단짝 친구의 차이는 ‘배타성’에 있다. 단짝 친구가 된 아이들은 다른 아이와는 단짝이 되지 않는다는데 암묵적으로 동의를 하고 관계를 맺는다. 둘 중 하나라도 이 약속을 어기면 단짝 관계는 당연히 깨지고, 깊은 상처를 받기도 한다. 배타성 요인 때문에 이 개념을 모르는 어린아이들은 단짝 친구를 만들 수 없다. 단짝 친구가 없다고 걱정하는 엄마들이 있는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없는 게 정상이다. 단짝 친구처럼 보이는 관계가 있다면 엄마들끼리 단짝이거나 한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집착하는 것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이의 문제는 스스로 친구 관계를 맺고, 관계를 유지하고자 애써본 경험이 없다는데 있었다. 엄마들끼리 만들어준 자리에서만 놀았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에게 다가갈 필요가 없었다. 다툼이 생기면 어른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해결해 주었기 때문에 갈등해결 능력도 미숙했다. 또래 관계에서 흔히 겪는 거절에 대한 내구력이 없다는 게 무엇보다도 문제를 심화시켰다. 학령 전기까지만 해도 거절당하는 건 놀지 못한다는 정도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너랑 안 논다는 말을 들어도 타격을 받지 않는다. 그렇지만 자의식이 생기면 타인의 반응이 자아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거절당하는 것은 상당히 고통스러운 경험이 된다. 3학년이 되면서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것도 이런데 이유가 있다. 엄마와 관계가 밀접하고 대화를 많이 한 아이는 거절을 경험해보지 않아 거절당하는 것을 더욱 두려워한다. 엄마가 마음을 잘 알아줄수록 친구에게도 비슷한 반응을 원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자기 마음을 조금이라도 몰라준다 싶으면 쉽게 삐치고 밀쳐내는 모습을 보인다. 엄마와의 놀이도 또래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엄마와 노는 게 재미있으면 있을수록 또래와의 놀이에는 흥미를 못 느낀다. 놀이는 재미있으려고 하는 것이지 애써 누군가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 아니다. 친구에게 엄마처럼 놀아달라고 한다면 그 놀이는 십 분도 못가 중단될 것이다. 사회성이 좋고 원만한 성격으로 키우고 싶다면 내 행동을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첫 번째, 다른 아이들에게 다가갈 기회를 주고, 주변을 맴돌 때 그대로 둔다.
두 번째, 아이가 주도하지 못해도 나서지 않는다.
세 번째, 아이가 거절당했을 때 대수롭지 않게 반응한다.
놓치지 말아야 할 한 가지가 더 있다. 사회성은 기술이 아니고 타인에게 우호적이고 친절한 태도가 우선되어야 한다. 쓸데없이 남의 흉을 보지 않고, 손해 보면 큰 일이라는 식으로 반응하지 말고, 만나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한다면 앞의 부분은 모두 잊어도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