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신고는 했지만, 결혼식은 아직인 22년 초여름 아기는 우리에게 찾아왔다.
계획된 임신이 아니었기에 우리는 다소 당황하였으나 곧 "쪼꼬미가 우리를 빨리 보고 싶었나 보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덕분에 배가 조금 나온 상태로 우리는 결혼식을 해야 했고 속도위반이 아니냐는 장난스러운 질문을 여러 번 받아야만 했다. 그때마다 "혼인신고는 되어있으니까, 속도위반은 아닙니다~"라는 말을 웃으며 반복하였고 이런 대화들의 마지막은 언제나 진심이 담긴 축하였다.
이후 아기는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와 만났다. 아내는 자연분만을 했기에 난 옆에서 손을 잡아 줄 수 있었고 덕분에 “응애!” 하는 울음소리가 들리자마자 "18시 22분이요!"하는 간호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따라왔다. 아직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눈가가 빨개졌고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
눈 깜짝할 새에 조리원에서의 열흘이 지나갔고 우리는 진정한 세 가족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선행학습을 한 대로 아이의 하루는 2시간이었기에 우리는 2시간마다 교대근무를 섰고, 그렇기에 머리만 닿으면 잤고, 내가 아닌 육아를 위해 먹는 날이 반복되었다.
이건 확실하다. 아기가 태어난 이후로 몸은 절대 편하지 않게되었다.
하지만 난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감정을 느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라고 해 봤자 내 팔뚝 길이 정도밖에 안 되는 아기가 목도 못 가눈 채 나에게 안겨있을 때, 난 심장이 빨리 뛰었다. 아기의 배냇짓이 진짜 웃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아내에게 아이가 웃는 것을 봤다고 자랑하며 신나 했고 인구조사를 위해 방문하신 분이 "세 분이 사시죠?"라고 했을 때 당황하여 몇 초간 정적이 흘렀지만 이내 방에 누워있는 아기를 떠올리곤 웃으며 그렇다고 하기도 했다. 아이의 빨래를 널 때면 ‘뭐 이렇게 조그만 바지가 있냐고, 이런 바지를 본 적 있냐고’ 아내의 얼굴에 꼭 한번은 들이밀고 빨래를 마저 널었다.
우리는 아기가 태어나고 진짜 가족이 되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아이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되어 나와 한걸음 더 가까워졌고 나의 단짝이었던 아내는 소중한 ‘우리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진정한 가족끼리 너의 일, 나의 일을 선 긋는 것은 무의미했다. 아이가 엉엉 우는데 “아가~ 오늘은 엄마가 분유 타는 날이야~”라던지, 아이가 엄마하고만 자겠다고 하는데 “자기야~오늘은 내가 아기를 재우는 날이니까 자기는 빨래해~”라고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서로 나서서 집안일을 하려고 하는 모범(?) 부부가 될 수 있었다.
아이와 함께한 이후 우리는, 어떤매체에서도 알려주지 않던 ‘나와 너의 미니미’를 키우는 기쁨과 나를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조그만 사람과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모든 부모가 마찬가지이겠지만 나또한 무엇과도 이 벅찬 감정을 바꿀 마음이 없다.
이것도 확실하다. 아기가 태어난 이후로 난 지금 더욱 행복하다.
노란색 옷을 좋아하는 사람을 아무도 신기하게 쳐다보지 않는 것처럼 아이를 낳지 않고 살아가는 삶 또한 매우 일반적이고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끊임없이 나와 사랑하는 아내를 반반 닮은 아이와 살아가는 기쁨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지 말하려고 한다. 마치 내가 맛있게 먹었던 초밥집을 주변 사람에게 가보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참! 구매하지 않은 사람의 리뷰보다는 내돈내산 후기를 더 찾게되지 않는가? 자녀계획으로 고민이 있다면 자녀를 낳고 키우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의 리뷰를 보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