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익한 미디어는 보여줘도 되지 않을까요?
손수예 소아청소년과 전문의(Youtube 우리동네 어린이병원 운영)
“선생님, 요새 영유아를 위한 정말 다양하고 유익한 콘텐츠들이 많잖아요.
집에서 놀이에 서툰 보호자와 단둘이 노는 것보다
가끔 재미있는 미디어를 보여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소아과 진료를 보면서 요즘 엄마, 아빠들에게 이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고된 육아로 충혈된 눈으로 저를 바라보며 ‘제발 괜찮다고 얘기해주세요’ 라는 표정을 짓는 엄마, 아빠에게 안타깝게도 저는 단호하게 답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들에게 미디어 노출은 최대한 늦게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라고요.
영유아기의 뇌는 정말 쉴틈 없이 성장합니다. 만 3세까지 이미 성인 뇌의 80%정도로 크기가 커집니다. 우리 몸의 신경계는 뉴런이라는 신경세포가 서로 연결된 시냅스를 끊임없이 만들면서 발달하게 됩니다. 이러한 신경 연결망은 만 6세까지 매우 활발하게 형성되고, 이후 학동기와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세부적인 기능들이 발달하게 됩니다. 이때 우리 뇌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효율성’입니다. 잘 쓰는 뇌의 영역은 집중적으로 발달 시키고 잘 쓰지 않는 영역은 덜 발달하게 되는 것이지요. 때문에 만 3세 이전 영유아기 때에는 양육자와의 교감과 다양한 놀이 경험을 통해 뇌의 여러 부위에 적절한 자극을 주어 기초 공사를 탄탄하게 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미디어는 시각과 청각의 일방향적인 자극을 제공합니다. 해석이 매우 쉽고 자극도 강합니다. 따라서, 아이는 반응에 적절하게 상호 작용하지 못합니다. 결국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도 시각, 청각 정보를 담당하는 뇌의 일부만 자극을 할 뿐 물질의 성질을 파악하고 전체적으로 상황판단을 하는 전두엽의 발달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따라서, 미디어 노출 시간이 많아질 수록 뇌 발달의 ‘효율성’으로 인해 시각 청각 등 특정 기능만 발달할 뿐 전두엽의 발달은 저해됩니다.
아이는 깊이 생각하고 판단하여 실행에 옮기는 능력을 잃게 되며 이는 집중력, 문해력 저하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영유아가 있는 가정에서 스크리닝 타임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준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잘 모르고 아이에게 미디어를 많이 노출시켰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행히 아이 뇌의 신경연결망 형성은 유동적이고 변화가 가능합니다. 이를 ‘뇌의 가소성’ 이라고 하는데 어린 아이일 수록 가소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미디어 노출이 많았던 뇌라도 충분히 되돌릴 수 있습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만 3~4세 어린이의 하루 평균 미디어 노출시간은 4시간 8분로 권장 시간의 4배가 넘는다고 합니다. 아동, 보호자, 교육자를 대상으로 주기적인 ‘미디어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며, 각 가정마다 미디어 사용 습관을 점검하고 규칙을 정해 스크린 타임을 조절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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